■  2017년 박정희탄생 100돌 기념:박정희서체】탄생.

부제 : 나는 왜 박정희서체를 만들었나?

 

학장시절 학교 현관문에 들어서면 각종 대회 우수상장과 트로피가 쭉 진열되어 있고 벽에는 박정희 대통령 신년 휘호가 크게 붙어있는 것을 보고 자랐다. 필체는 힘이 넘쳐나 ‘참, 대통령께서는 한문을 잘 쓰시는구나. 나도 나중에 서예를 배우면 저런 필체로 글을 써야지’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글로 된 휘호를 보면 한문과 너무 대조적이어서 생각이 바뀐다. 어떻게 한글을 저렇게 못 쓰시나. 게다가 단순한 구호 같은 문장인 ‘싸우면서 건설하자’든가 ‘하면 된다’는 글을 볼 때는 적어도 한 나라의 대통령이 쓴 문장이면 좀 더 고상하고 격조 높은 문장을 사용해야지 시중에 아무나 할 수 있는 말을 휘호랍시고 적은 것이 못마땅하기도 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 돌이켜보니 한 나라의 지도자가 그 시대 국민들에게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그렇게 극명하고 분명한 어조로 방향을 제시할 수 있었던 것은 실로 감탄해 마지않는다.

 

나는 군행정병으로 3년을 복무하면서 차드 작성도 많이 했고, 기안문서와 각종 명령서 작성은 철필로 원지를 긁어 등사지에 밀어 여러 장 복사하여 게시하거나 발송하였다. 그런 시절을 거치면서 자연히 글자와 각별한 인연을 맺게 되었다. 제대 후에는 옥외광고 간판 업을 직업으로 삼으면서 글자는 생업의 수단과 방법이 되었다. 그 당시 간판 글씨 제작, 현수막 글씨 쓰기는 백퍼센트 수작업으로 이루어졌던 때였는데 간판장이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한글을 좀 더 예술적으로 표현하려고 나름대로 창작에 열정을 쏟았다.

 

몇 년 지나지 않아 기계문명이 컴퓨터라는 이름으로 급물살을 타고 밀려와 변화의 시대가 눈앞에 다가왔다. 그것은 윈도우 3.0 탄생과 짝을 맞춘 컴퓨터 문자커팅기 등장이었다. 한글서체가 기계적으로 입력된 컴퓨터에서 자기가 원하는 각종 글자를 손으로 도안하지 않아도 빠른 시간에 대량으로 출력되는 시기가 오자 손글씨 도안은 하루아침에 사라질 위기에 도래하였다. 깔끔하게 출력되는 기계 글이 너무나 반가운 게 업계의 반응이었다.

 

이제 이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의 필수 과목인(?) 디자인 실력이 유명무실해졌고, 한글 도안을 못하는 사람도 간판을 만들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처음에는 편했다. 하지만 손글씨의 멋과 맛을 버릴 수가 없었다. 서체회사에서 제공하는 각종 간판커팅용 서체라는 것도 마음에 차지 않았다. 늘 내 스타일대로 익숙하게 글자를 주무르는 동안 어느새 나만의 고유한 서체가 틀이 잡혀 무슨 글자든지 내 손 끝에서 자동적으로 그림 그리듯 그려지고 있었다. 그때, ‘내 서체를 만들자. 내 서체를 컴퓨터에 저장시켜 언제든지 불러내어 편하게 사용해 보자. 내 서체를 만드는 방법이 없을까?’ 이런 실로 어처구니없는 모험적 시도를 겁도 없이 발상하게 되었다.

 

나는 내 나이 또래 중 비교적 일찍 컴퓨터와 지척에서 생활한 것에 감사한다. 대학에서 포트란이라는 컴퓨터 언어를 배우면서 그 분야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 갖게 되었고 DOS명령어를 땀을 뻘뻘 흘리며 배우던 때가 지금도 기억에 새록새록 하다. 집에 386pc가 있었다. 막 새로 나온 486pc로 교체하면서 폰트를 만드는 프로그램이 어떤 게 있는지 조사했다. 모두 외국 프로그램을 사용했고 가격도 고가였다. 막대한 투자를 하여 영문으로 된 소프트웨어 툴을 익힐 수 있을까 자신감이 없었다. 이때 폰트 개발에 희소식이 들려왔다. 내겐 행운이고 축복이었다. 1996년 장영실 상을 수상한 한글글꼴 제작 툴인 ‘폰트매니아 FontMania’라는 국산 소프트웨어가 나왔다는 전자신문의 발표였다. 당시 판매가격이 삼십만 원 정도로 기억되는데 수습기사 한 달 월급과 맞먹었다. 나는 망서림없이 바로 구입했다.

 

서체 프로그램을 인스톨하고 설명서를 보면서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황무지 미개척분야를 혼자 헤쳐 나갔다. 한글 한 자 한 자를 스케치하여 모양을 그려 컴퓨터에 올려 선을 그리고 수정을 거듭하여 완성되면 렌더링 과정을 거쳐 트루타입 ttf파일로 변환해야 비로소 컴퓨터 폰트로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렌더링 하는 시간이 엄청 길었다. 하루 저녁에 만들어서 변환시킬 수 있는 글자가 고작 너댓자. 졸리는 잠을 참아가며 모니터에 머리를 기대고 이제나 저제나 느려빠진 컴퓨터 응답을 눈 빠지게 기다리느라 뜬눈으로 며칠 동안 날을 세우다가 결국 얼마 못가 두 손 들고 작업을 포기해 버리고 말았다. 한 벌의 서체를 완성하려면 한글 2,350자, 영문 대소문자, 아라비아 숫자, 그리고 각종 부호와 심벌마크 등 적어도 2,500자 이상을 만들어야 컴퓨터에서 기본으로 출력되는데 하루 5자도 못 만들어 어느 세월에 내 서체를 만든단 말인가? 시작 때의 의욕이 연기처럼 날아가 버렸고 내 결심도 물거품처럼 부셔지고 말았다.

 

다들 한글이 과학적이라고 한다. 나는 이 말에 동의하는 부분도 있고 그렇지 않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한다. 과학적이라는 이유는 한글서체를 만들면서 자음과 모음을 꿰맞추는 퍼즐이 꽤 재미있다고나할까 공식화된 규칙이 과학적이라고 느껴지고 자음 모음 획수 하나하나가 그림처럼 도형화된 이미지에 미적 아름다음을 얼마든지 창조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비과학적이라는 것은? 영어는 기본자가 대문자 26자, 소문자 26자 도합 52자, 일본어는 히라가나 46자, 가타카나 46자 모두 92자이라서 이들 나라 글자는 마음만 먹으면 반나절에 서체 하나를 뚝딱 완성할 수 있다. 하지만 세종대왕이 만드신 한글은 자음과 모음 그리고 받침이 합쳐져야 글자의 형태가 갖춰지니 이게 과학적인지 아닌지 분별하기 어렵지만 한 벌의 한글 폰트를 만드는 데는 2,350자를 요구하니 그야말로 팔만대장경을 조판하는 심정과 각오로 정신을 가다듬어 인내하며 시간과 싸우지 않으면 한글서체를 완성할 수 없게 되어있다. 더 기가 찬 것은 출판 인쇄물에 쓰이는 폰트의 글자 수는 우리가 대개 잘 사용하지 않는 이상한 한글 조합글자(보통 외계어라 부르기도 한다)까지 만들어야하니 그 숫자가 11,172자나 된다는 놀라운 사실이다.

 

서체작업을 포기한 후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러는 동안 컴퓨터가 펜티엄 급으로 급속히 발전하고 메모리와 저장장치 등 pc환경이 좋아졌고 처리속도도 빨랐다. 먼지 묻은 폰트매니아 서체제작프로그램을 다시 꺼내 인스톨시키고 비장한 각오로 폰트작업을 재시도 했다. 예전보다 컴퓨터 환경이 크게 향상되었다. 그러나 얼마 못가 복잡한 상념이 앞길을 막았다. ‘내 서체를, 내가 좋다고 다른 사람도 좋아할까? 다른 사람이 내 서체를 사용해주지 않는다면 이렇게 노력해서 만든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라는 회의감과 무력감에 휩싸여 작업을 더 이상 진행할 수 없었다. 서체작업이란 것이 간단하지 않고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구나. 이 작업은 내겐 의미 없는 일이며 과욕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목적도 목표도 없이 내 인내를 시험도 하기 전에 나는 그렇게 또 두 번째 중단의 길로 들어서고 말았다. 가끔 미련이 남아 어떤 서체가 좋을까 생각도 해보고 우리 국민이 어떤 서체를 좋아할까? 하고 신서체를 구상하는 꿈을 꾸기도 했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난 것이 고교 은사님 말씀이 떠올랐다. 수업시간에 5.16혁명에 관한 현대사를 공부할 때 들은 이야기다.

“후세의 사가들은 세종대왕과 박정희 대통령을 5,000년 민족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로 꼽을 것이다. 그 중에서 딱 한 사람을 택하라면 배고픔에서 국민을 해방시킨 박정희 대통령을 선택할 것이다.” 그때는 정치가 무엇이며, 역사가 무엇인지도 제대로 모를 나이에 그저 엄격하고 근엄한 한 나라의 대통령 박정희에 대한 평가를 건성으로 스치듯 흘려버렸는데 갑자기 그 말씀이 순간적으로 떠올랐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박정희 대통령의 행적을 공부하면서 느낀 것인데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은사님의 평가가 시인 노산 이은상의 평가와 어찌 그리 흡사한지 새삼 놀라움과 존경심을 금치 못했다.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역임한 김정렴씨가 병상의 노산 이은상 선생을 문병했을 때 노산이 말한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소회한 글이 책에 있어 여기에 소개한다.

 

“박정희는 세종과 이충무공을 합해 놓은 인물로 후세 사가들이 평가할 것이다. 세종은 성군이다. 한글창제를 비롯하여 내치 외치에서 훌륭한 업적을 남겼다. 그러나 그는 왕조시대 절대 권력을 행사하는 군왕으로 재위 32년 오랜 집권에서 그와 같은 업적이 가능했다. 그때 우리나라 인구가 약 1천만 내외인데 극소수 양반층을 제외한 국민들은 헐벗고 굶주리는 비참한 생활을 했다. 정치란 무엇인가! 백성들에게 등따시고 배부르게 해주는 것, 이것이 곧 정치의 근본이다. 세종은 백성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했다. 이충무공이 성웅임이 분명하다. 적을 맞이하여 싸워서 이긴 장수이며 자기 몸을 죽임으로써 나라를 구한다. 손자병법에 이르기를 백 번을 싸워서 백 번 다 이김이 최상 아니다. 싸우지 아니하고 이기는 것이 으뜸병법이라 했다. 오늘 남북한 체제경쟁에서 박정희는 북한의 김일성을 싸우지 않고 이긴 사람이다. 그는 민족의 정통성을 확립할 수 있는 경제와 문화의 기초를 닦아 놓았으며 한국민족을 세계사 중심부에 우뚝 세워 놓았다. 그것으로 족하지 않은가!”

 

이를 뒷받침하는 통계수치를 발견했다. 2002년 한국갤럽조사와 2003년 월간조선이 국민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인데 두 조사 모두 박정희 대통령이 세종대왕을 앞서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로 꼽고 있는 통계로 그 의미하는 바가 크다.

 

■ 역사상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전국 만 20세 이상 성인남녀 1,500명 대상)

조사기관 : 한국갤럽 (2002. 8. 14. 연합뉴스 보도)

1위 : 박정희 (20.1%)

2위 : 세종대왕 (16%)

3위 : 이순신 (15.3%)

4위 : 김구 (7.9%)

 

■ 5천년 한국을 빛낸 위대한 인물은 (총 3,937명 참가)

조사기관: 월간조선 (2003.9.22.~11.14 조사)

1위 : 박정희 1,943명 (49.4%)

2위 : 세종대왕 393명 (10%)

3위 : 광개토대왕 290명 (7.4%)

4위 : 이순신장군 229명 (5.8%)

 

위 통계에서 본대로 2002년과 2003년 우리국민 대다수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로 세종대왕보다는 박정희 대통령을 꼽았다.

 

학창시절 이야기를 좀 더 하자면 북한의 침략을 대비하여 학교에서 교련과목이 추가되어 군사훈련을 받을 즈음, 1968년 ‘국민교육헌장’이 제정 공포되어 전국적으로 각 학교마다 암송대회가 실시됐다. 선생님은 암송한 학생은 집에 보내줬고, 암송 못한 학생은 다 외울 때까지 학교에 붙잡아 두었다. 국민교육헌장 전문을 그대로 암기하여 옮겨 적는 대회도 있었는데 글자 한 자, 부호 하나 틀리지 않게 쓰는 대회였는데 그때 나는 최고상으로 한문으로 ‘상’이라고 큼직한 도장이 찍힌 노트 두 권을 상으로 받아 오랫동안 자랑삼아 가지고 다녔다. 공책 한 권 상을 받은 학생들 중에 많은 학생들이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하고……’에서 ‘계발’을 ‘개발’로 잘 못 쓴 것이다. 지금도 국민교육헌장의 이념과 목표를 줄줄이 외운다. 50년 전의 국민교육헌장이 오늘날 우리나라가 처한 현실로 볼 때 대한민국 국민이 나아갈 바를 제시하는 국민교육이념으로도 조금도 손색이 없다고 말하고 싶다.

 

다시 서체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그렇다! 5천년 역사의 위인인 박정희 대통령 서체를 만들자! 위대한 인물이 탄생하듯, 그 인물의 필적을 탄생시키는 것도 보람된 일이 아닌가. 이런 결정을 내리자 마치 서체가 완성된 것처럼 마음이 뿌듯하고 기뻤다. 인터넷에서, 헌책방에서, 전국에 흩어진 기념탑과 비문 글씨를 찾아다니며 박대통령의 글씨라면 닥치는 대로 수집하였다. 이리하여 수집한 글자가 200여 자. 나는 이 글자의 형태를 정리하면서 박정희 글씨가 과연 어떤 특징이 있는지 분석하기 시작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필체에는 특이점이 발견된다. 어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그 만의 독특한 필법이 있다. 힘과 절도와 엄격함을 생명으로 하는 군인정신이 고스란히 배어있다는 것이다. 사람마다 글자에는 그 사람의 혼과 정신이 들어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박정희 대통령의 필체에 나타난 혼과 정신이란 무엇인가? 그는 체구는 작지만 필체의 획 놀림은 대단히 크다. 크다 못해 터질 것 같다. 글자는 똑바로 세우지 않고 약간 우측으로 기우려 살아 움직이는 듯 한 생동감을 부여한다. 뻗침은 강하게 하되 내리긋는 세로획은 붓을 꾹 찍어 내려가면서 힘을 빼다가 중간에서 약간 힘을 주었다가 다시 힘을 빼고 끝부분에는 도장 찍듯 툭 붓을 눌러 찍어 마무리한다. 이것은 마치 그가 목표를 정하면 기필코 달성하고 말겠다는 굳은 결심의 방점 같다. 글자의 상체(초성과 중성)는 크게 쓰고 하체(종성 받침)은 작게 쓰는 습관이 있는데 조형미로 볼 때 글자가 떠 있는 느낌을 주어 고정적이 아닌 유동적인 형태를 보여주는 것도 특징이다. 이는 반대의 경우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운데, 상체보다 하체에 무게를 둔 글씨는 땅에 착 달라붙는 느낌을 주어 생동감 없는 고착상태인 형태임을 상상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차갑도록 무겁고 고집스럽도록 냉철한 기운이 도는 그의 필체를 평론가들은 질박하면서도 투박하고 선이 굵은 필체라 평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노태우 정권에서 김영삼 정권으로 넘어가면서 소위 ‘민주화’ 구호아래 역사바로세우기 일환으로 과거 군사정부 문화를 청산한다며 박정희 대통령 때리기가 진행되었다. 그것이 광화문 현판 철거 시도였다. 반대여론을 무릅쓰고 광화문 현판은 예상대로 철거되었다. 마치 박정희 대통령의 18년 업적을 허물어뜨리는 듯 떨어져나가는 현판처럼 내 눈물도 떨어져 나갔다. ‘저러다간 앞으로 전국에 흩어진 박정희 대통령의 흔적들-기념탑 비문, 휘호, 표지석-은 차츰차츰 없애버리고 말겠구나하는 위기감이 들었다. 대통령이 쓴 글자 하나하나도 역사적 보존 자료라고 생각하는데 그 기록물을 없애버린다면 재생이 가능할까? 새로운 정권이 과거 정권의 흔적을 없앨 때 어디 공고라고 하겠는가? 생업에 바쁜 국민들이 언제 어디에 무엇이 없어진 줄을 알기나 하겠는가? 예상치 못한 광화문 현판 철거를 전후해 탑골공원 정문 삼일문 현판 파손, 윤봉길 사당 박정희 친필 충의사 현판 철거. 남산공원 김구 선생 동상 측면 박정희 추모글 훼손, 문래공원 박정희 흉상 페인트 세례 등 크고 작은 파괴행위가 이어졌고 최근에도 박정희 생가 방화사건, 생가 박정희 동상 낙서, 박정희기념공원 표지석 페인트 욕설 등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실태다.

 

사태가 이렇게 급변하니 마음도 조급했다. 박정희서체 개발은 피하려야 피할 수 없는 최후방 전선까지 밀려버린 기분이었다. 그 동안 수차례의 좌절과 포기,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더는 늦출 수 없고 이번에 하지 않으면 영영 손도 댈 수 없는 절박한 상황에 처했고 내가 아니면 누구도 박정희서체를 만들지도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이란 생각만 들었다. 이제 갈림길에서 양자 선택만 남았다. 서체를 만들 것인가? 포기하고 말 것인가?

 

마음을 정리하였다. 과연 내가 이 거대한 일을 감당해낼 수 있을까?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나. 이 복잡한 서체 작업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가 어떤 인물인가를 알아야 했다. 그의 사상과 철학이 무엇이며, 무엇을 위해 목숨을 내건 5.16 혁명을 감행했으며, 독재자란 오명을 쓰며 유신헌법을 만들어 장기집권을 했는지에 대한 정리와 해석이 필요했다. 또한 5천 년 가난을 탈출하기 위해 조국근대화의 진군나팔을 왜 불어야만 했는지에 대해서도 그에게 명확한 답을 얻어야만 했다. 이러한 의문이 풀리고 난 후라야 자신 있게 서체작업을 할 수 있다는 각오와 함께 앞으로 만들 서체 속에 그런 정신과 기운을 불어넣어야 겠다는 사명감 때문이었다. 그에 관한 책은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 결과 신비스러운 새 인물 발견에 새삼 놀란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알면 알수록, 파면 팔수록 샘솟아나는 박정희라는 인물의 신비감을 우리는 여태껏 가까이 있을 때는 몰랐다는 사실이다. 아니 우리 곁을 떠난 지금도 그에 대해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인간이 어떤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까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능성의 한계란 무궁하다는 것을 그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에 대해 세삼 놀랍다. 이것은 그냥 입바른 찬사가 아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힘을 그에게서 보았기 때문이다.

 

그의 정치적 신념과 철학을 조금씩 이해하면서 서체를 만드는데 있어서도 박정희 대통령식 사고로 글자를 형상해 나가기로 하였다. 수집하지 못한 글자, 없는 글자는 ‘박정희 대통령이라면 이 글을 어떻게 썼을까’하고 먼저 생각해 보게 된다. 내 주관적 디자인 규칙은 철저히 배제시키고 글자마다 그의 사상과 감정을 투영시키고 가장 박정희다운 서체를 만들기 위해 한 자 한 자 혼과 정신을 불어넣었다. 형태적으로 큰 글씨 작은 글씨를 일정하게 배율하고, 경계선이 선명하지 못한 붓글씨의 라인을 긋고, 자음이 초성에 올 때와 종성 받침에 올 때에 따라 쓰임새의 변화를 조정하고, 글자마다 무게 중심을 정하고 형태적 균형을 잡아 최종적으로 글자간의 간격, 전체적인 조화를 맞춰가며 작업한지 5여 년. 드디어 박정희서체-박정희국력체M, 박정희국력세로글V, 박정희국력체W, 박정희국력체L, 박정희새마을체P, 박정희조국근대화ROK-를 완성하게 이르렀다. 마침내 등짝에 진 무거운 짐을 내려놓게 되었다. 그동안 박정희 대통령에게 진 혜택 받은 국민으로서의 빚을 조금은 덜 수 있었다. 내 나이 육십 중반에 들어서 말이다. 되돌아보니 참으로 오랜 시간과의 고투였다.

 

이제 이 서체가 컴퓨터 응용프로그램에 제대로 활용되는지 시험하는 절차가 남아있다. 서체 활용도 테스트를 위해 한글 문서 프로그램인 한컴오피스를 비롯한 각종 텍스트의 시험을 거쳤고, 또 그래픽 프로그램의 대명사격인 포토샵, 일러스트레이터 그리고 영상제작 자막 프로그램인 프리미어, 에프터이펙트를 통해 출력문제가 이상 없이 원활하게 작동되는지도 시험 확인하였다. 마지막으로 인터넷 웹상에서 어떻게 출력되며 영상자막 효과는 제대로 표현 되는지 실험하기 위해서는 개인홈페이지(www.kimfont.com)를 개설하고 그와 연계하여 유튜브채널 좋은생각-박정희서체 https://www.youtube.com/channel/UCz4vQOBNnRrv6oi-OO4q1KQ 까지 만들게 되었다.

 

유튜브 채널에는 박정희 대통령 관련 동영상을 제작했고 서체는 모두 박정희서체로 자막을 넣어 다양한 연출 효과를 시험해 보았다. 성공여부에 대한 판가름은 시청자께서 판단하시겠지만 필자는 노력의 대가만큼 결과에 대해서 만족감을 느낀다.

 

그 동안 제작한 40여 편의 동영상 중 박정희 대통령 관련 연설장면, 국민교육헌장, 시국특별담화문, 나의 조국 노래, 새마을 노래, 자작시 영상 등에 박정희서체와 더불어 필자가 직접 개발한 다른 여러 서체와 혼합하여 자막을 코딩하여 2여 년 동안 게시해 왔는데 「좋은생각-박정희서체」 콘텐츠는 독특하고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아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누렸다. 이제 이 채널을 구독하는 독자수가 8백 명에 육박해 박정희서체를 가까이서 아껴주고 사랑해 준 데 대해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여기서 잠시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 또는 휘호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6.26전쟁 참전군 기념탑, 순국선열추모탑, 애국선열 조상 동상건립, 건설과 고속도로 준공탑과 위령탑, 안동댐을 비롯한 각종 건설공사 현장에 휘호나 제자를 많이 남겼다. 위대한 생애-박정희 휘호집에 따르면, 지금까지 알려진 것만 약 550여 점이 파악되는데 모두 열거하지 못하고 대략 간추려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6,25전쟁과 관련한 기념탑을 보면, 유엔군위령탑, 재일학도의용군참전기념비, 콜롬비아군참전기념비, 미국군참전기념비, 네델란드군참전기념비, 벨기에 및 룩셈브르크군참전기념비, 프랑스군참전기념비, 그리스군참전기념비, 타이랜드군참전기념비, 경찰충혼탑, 백마고지삼용사상, 전우신문, 한국순직종군기자추념비, 의료지원단참전기념비, 헤리에스트루만상 등에 친필로 동상에 이름을 새겼고, 건설공사 및 고속도로 관련 글씨를 보면, 영동. 동해고속도로준공기념탑, 호남.남해고속도로준공기념탑, 산업전사위령탑, 천호대교, 잠수교, 영산강유역농업개발기념탑, 담양호, 장성호, 나주호, 광주호, 팔당호, 팔당대교, 아산호, 남양호, 춘천호, 소양호, 안동다목적준공기념탑, 삽교천유역농업개발기념탑, 한국도로공사현판, 언양,울산고속도로, 서울대교, 낙동대교, 남산제1호터널, 태능국제스케이트장, 거제대교, 통일로, 잠실대교, 어린이대공원, 소양강다목적댐준공기념탑, 제2낙동대교, 영동교, 구미대교, 북악터널, 계화도농협종합개발사업준공기념탑, 5.16도로, 구미공업단지, 중산간개발 등 사업 현장에도 직접 쓴 글을 남겼다. 구국순국선열을 추모하기위한 문화사업에도 힘을 기우렸는데 그 내용을 보면 칠백의사순의탑, 의병항쟁기념탑, 호국연무사, 행주대첩비, 대첩문, 충혼탑, 현충사, 삼일문, 영호루, 진해호국사, 화랑의 집, 화랑의 얼, 현충문, 충의사, 현충사 등에 쓴 글이 전국에 산재해 있고 조상선열동상으로는 충무공이순신장군상, 세종대왕상, 고당조만식선생상, 유정사명대사상, 남강이승훈선생상, 신사임당, 충장공정발장군상, 충렬공송상현선생상 등 많은 동상에 박대통령의 제자가 새겨져 후세까지 정신적 유산을 물려주고 있다.

 

박정희기념도서관이 서울 변두리 한 구석에 초라하게 위치해도 그를 사랑하는 우리 국민은 위축될 필요가 없다. 앞에서 설명한대로 북쪽 끝 통일전망대 애기봉에서부터 남쪽 끝 제주도 의병항쟁기념탑까지 동서남북 사방 곳곳에 그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고 가는 곳마다 그의 숨결과 자취가 묻어있다. 이것 모두 살아있는 박정희기념관 아닌가! 전국적으로 기념관이 널려 있어 언제든지 그를 만날 수 있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고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면 된다. 곳곳마다 조국근대화를 위해 몸부림쳤던 당대의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의 피와 눈물과 땀이 저려있는 역사의 산 증거물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 우렁찬 건설과 역사의 고동소리 현장을 자라나는 어린 세대는 물론 외국인에게 널리 한강의 기적,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발전상을 만방에 알려야 한다. 박정희 대통령이 어떻게 국민을 정신무장 시켰고 국력을 신장시켰는지를 확인하는데 손색없는 기념비적 자원들이다. 이 유산은 다시 각 지방마다 벨트로 묶어 전쟁의 참화를 겪은 대한민국이 어떻게 선진국 대열에 우뚝 선지를 현장을 통해 눈으로 확인시키는 교육실습장으로 활용하고 나아가 국가적 사업으로 관광순회코스로 활용해도 조금도 손색없는 로드맵이라 생각 든다. 이제 남은 숙제는 단 하나, 우리 세대는 물론 후손들이 이 유작을 길이길이 보존하는 역사적 책무를 완수하는 길만 남아있을 뿐이다.

 

대통령의 숨결, 메모지 한 장이나 필적 하나도 역사적으로 소중한 자료이다. 앞서 밝힌 대로 박정희 대통령의 필적은 전국에 널려 있어 ‘대한민국 전체가 박정희기념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지금껏 수십 년 동안 박정희라는 거목을 잊고 살았다. 그러는 동안 그를 비판한 세력은 그의 업적을 왜곡 폄훼하고 흔적을 지우려했다. 더 이상 방관해서 안 되고 침묵해서도 안 된다. 박정희 정신을 배워야만 그 정신을 통해 박정희 대통령과 만남의 즐거움을 얻게 된다. 그의 정신을 기리는 것 중에 글씨의 통일문제도 그 중에 하나다. 박정희기념재단, 구미시, 생가 그 밖의 박정희 대통령 관련 단체 등에서 홍보하고 있는 홈페이지 글씨, 전시장 홍보 글씨, 우편물 발송 글씨, 책자나 카타록 글씨를 보면 자음과 모음을 떼어서 짜깁기하여 비슷하게 흉내 내어 만들다보니 중구난방 각양각색이고 통일화 되지 못해 균형감이 떨어진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관련단체마다 글자 디자이너의 감각이 달라서 글씨체가 천태만상인 까닭이다. 그리하여 글자는 엉성하고 짜임새 없고 시각적 이미지도 떨어진다. 붓글씨 모양의 한글 서체를 불러와서 박정희 글씨로 대용하는 경우도 있는데 언제까지 그런 서체를 빌려 쓸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닌가.

 

어쨌든 박정희 대통령 글씨 짜깁기나 비슷한 한글서체의 사용은 신선감이 떨어지고 이미지화 시키지 못한다. 국민들 머릿속에 박정희 하면 어떤 서체가 떠오르고, 그 서체를 보면 박정희가 떠올라야 하는데, 필자의 박정희서체가 그런 역할을 대신 할 수 있었으면 한다. 이런 주장을 하면 당신의 박정희서체를 표준으로 삼으란 말인가 하고 따지겠지만 그런 오해를 받더라도 그러길 바라며 그렇게라도 표준화 내지 통일화되었으면 좋겠다.

 

박정희서체 발표 후 여러 곳에서 찬사의 인사를 받았는데 그저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에서는 이 서체를 벌써 로고로 사용한 것에 감사드린다. 나는 이 서체 이름을 당당하게 ‘박정희서체’로 작명하여 모두 저작등록을 마쳤다. 2017년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0돌 기념을 맞아 구미생가를 찾아 이 서체를 올리면서 님의 탄생처럼 박정희서체도 함께 태어난 것을 알렸다.

 

회고해보면 1996년에 구입한 폰트매니아 FontMania1.0버전 서체제작 프로그램을 20년 넘도록 아직도 애지중지 사용하고 있다. Windows7 환경에서는 구동도 되지도 않고 WindowsXP 이하 버전에서만 작동하는 구닥다리 컴퓨터에 구닥다리인 프로그램의 조합인 셈이다. 아쉽게도 장영실 상을 수상한 소프트웨어 개발자는 1.0버전이 시작이자 끝으로 더 이상 제품을 업그레이드 시키지 못하고 퇴장하고 말았다. 정말 한글 발전의 슬픈 현주소라는 생각이 들어 늘 안타깝게 생각한다. 하지만 사용자의 의지에 달려있다. 아무리 좋은 소프트웨어가 있으면 무엇 하나. 꿰어야 보배가 아닌가. 한국인이 개발한 토종 한글프로그램으로 당당하게 박정희서체를 개발했고 또 여러 서체를 개발하여 등록한 것만도 10개가 되는 성과를 얻은 게 다 폰트매니아 덕이다. 오늘도 여전히 사랑스러운 이 프로그램으로 서체작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언제까지나 나처럼 20년 전에 만들었던 소프트웨어로 한글서체를 만들 수는 없지 않는가? 앞서 말한 것처럼 한글은 2,350자 내지 11,172자를 만들어야 서체가 완성되니 한글서체 개발에 뜻을 품고 있는 젊고 유능한 학생층 디자이너들이 아름다운 한글 글씨를 디자인하여 폰트화 하려고 해도 힘든 과정을 견디지 못하고 거의 중도에 포기해버려 팔만대장경 조판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꿈을 접는 현실을 종종 보게 된다. 이 장벽을 뛰어 넘을 수 있는 길은 국가가 이 사업에 주도적으로 나서든지 아니면 폰트매니아 개발자처럼 사명감 있는 프로그래머가 나타나 쉽고 간단한 한글서체제작 툴을 개발할 때만이 해결된다고 본다. 그 툴을 사용해 누구든지 자신이 구상한 한글서체를 만들어 한글발전에도 기여하고 더 나아가 세계화에 발맞춰 한글시장을 더 넓게 개척해 나가야 할 것이다.

 

끝으로 내게 남은 과제가 하나 더 있다. 서두에 말한 박정희 대통령의 그 웅장한 한문필체를 폰트로 완성시키는 길이다. 이미 제작된 한글 박정희서체와 자연스럽게 접목시키는 일만 남았다. 그런데 이젠 정말 자신이 없다. 시작도 하기 전에 말이다. 한자 4,888자라는 어마어마한 글자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자는 한글 환경과 너무나 다르고 지금은 잘 사용하지도 않는다. 이일을 시작하려면 우선 붓글씨 서예 기본부터 익히고 작업에 들어가야 한다. 몇 년이 걸릴까? 그때쯤 내 나이는? 누군가가 나서서 마무리 지어야 하는데 과연 내가 감당해 낼 수 있을까? 잠자리에서 이런저런 망상을 하다 박정희 대통령을 만나는 꿈을 기대해 본다.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다.

 

“오늘 하루도 박정희서체로 영상을 구상하며 당신의 은혜와 감사를 받으며 즐거운 만남의 소중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더 큰 눈으로 당신을 가까이서 보게 해 주십시오”

 


  • 작성일 : 2017년 8월 16일